cockleshell
조개껍데기 혹은 작은 배
박지영
2024. 6. 11 - 6. 19
작업실 한편에서 서서히 말라비틀어져 끝내 찌꺼기가 되어버린 먹물은 박지영의 작업의 시발점이다. 수분의 증발은 찰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먹물이 찌꺼기로 변모하는 것은 사실상 비가시적인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작가가 먹 찌꺼기를 작업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무심한 연속과 순간의 불연속적 모순이 충돌하는 시점에서 파생된다. 작가에게 찌꺼기는 세상 속에 냉담히 떨궈진 작가 자신이면서 언젠가 부지불식간에 타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우리 모두를 의미한다. 먹 찌꺼기는 역사라 칭하기엔 너무나 소소한 과거를 담은 그릇이자 돛이 없이 흘러가는 ‘cockleshell’이다. 작가에게 찌꺼기는 환경과 시간이 만들어낸 미성숙한 결과물이자 작가가 세상을 마주하는 관점이며, 단순히 쓸모없이 버려진 것 이상의 의미로서 작품 위를 부유하는 ‘cockleshell’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먹물과 달리 벼루 끝에 매달려 굳어버린 먹 찌꺼기는 유용성을 잃고 소외된 존재로 전락한다. 하지만 박지영의 작업은 존재의 ‘쓸모’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선보다는 대립 되는 존재의 간극에서 생겨난 ‘사이 공간’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먹 찌꺼기들은 박지영의 작업 초반, 작품 전면에 부착되는 부조의 형태로 등장하다가 점차 회화의 표면을 배회하는 존재들로 치환된다. 회화 작업으로 항해를 시작한 찌꺼기들은 때로는 날카로운 형태로 한편으로는 뭉근한 태도로 등장한다. 고르지 못한 표면 위로 층위를 만들며 먹물의 형태로서 다시 평면으로 녹아 들어간 찌꺼기들은 부피를 가진 실제와 납작해진 회화의 경계인 ‘사이 공간’으로의 표류를 시작한다. 그것의 모습은 첨예한 칼끝으로도, 따스한 위로로도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작가는 켜켜이 호분을 사용하여 먹 찌꺼기들 사이의 레이어를 형성하여 공간감을 조성한다. 먹 찌꺼기들은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작은 배를 타고 작품의 무한한 여백 속으로 내달린다.
박지영의 ‘사이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먹 찌꺼기로 변환된 먹물은 먹 찌꺼기를 표현하는 도구로 환원되지만 결코 원점으로 재귀하지는 않는다. 이는 ‘사이 공간’이 생성된 조그마한 틈새에서 찌꺼기는 단선적이면서도 동시에 다층적인 구조로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허무해 보이기도 하고 때론 혼란스러운 ‘사이 공간’의 경계선에 가만히 서서 우리에게 안부를 묻는다.
(글: 홍하윤, 독립 큐레이터)
박지영
Instagram @jiyoung17417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전공 석사과정수료
전시 약력
2024 단체전 <환상 통>, 갤러리 coso
2024 단체전 <먹LAB>, 라메르 갤러리
2023 단체전<Form>, Cica museum
2023 단체전 <시차>, Buronzu gallery (벨기에 리에주)
2023 개인전<내 곁에서 사라지지 말아요>, 이화 아트 갤러리
2023 단체전 <별 뉘>, 이화여자대학교 서울병원 Space B-Two
2023 단체전 <그라운딩 스터디> 라메르 갤러리
2022 단체전 <완전하지 않은 풍경>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 Space U
2022 단체전 <증발하지 않는 물 자국> 이화 아트 파빌리온
2021 단체전 <이 작품을 주목한다.> 이화 아트 파빌리온
2020 단체전 <잔류하는 물성> 스페이스 나인
2017 단체전 <작은 그림전>, 이화익 갤러리
2017 단체전 <浮飛전(뜨기도 날기도)> 이화아트센터